시험기간 때문에 너무 바빠서 포스팅이 없었습니다.

이제서야 여유가 생겨서 밀린 포스팅들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좋은 글입니다.

전문을 읽으시는 것을 권고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시바 총리를 좋아하는 편에 속하고 일본의 역대 총리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나왔구나라는 평을 내릴 정도로 일본이 전후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겠구나라는 평을 내렸지만.

일본의 대내 정치적 환경, 미일 무역협상 등 여러가지 사건들로 인해 비록 총리에 자리에서 내려오시게 되어 아쉽습니다. 단순히 한국에 우호적이라고 해서 제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도쿄지헨의 노래를 듣고 있는 저는 매국노라고 말씀하셔도 할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마루노우치 새디스틱.. 죽기전까지 듣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찌 되었던 이런 이시바 총리의 말을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일본은 왜 대체 발전을 하게 된것인가? 국내의 정치 시스템은 이를 왜 막지 못했는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세계가 총력전(総⼒戦)의 시대에 들어가 있던 가운데에, 개전 전에 내각이 설치한 「총력전 연구소(総⼒戦研究所)」나 육군성이 설치한 소위 「아키마루 기관(秋丸機関)」등의 예측에 의하면, 패전은 필연이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은 전쟁 수행이 곤란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부 및 군부의 수뇌진도 그것을 인식했지만, 왜 전쟁을 회피하겠다는 결단을 할 수 없는 채, 무모한 전쟁에 돌진해 국내외의 많은 무고한 생명을 희생하는 결과가 되어 버렸는가. 요나이 미쓰마사(⽶内光政) 전 총리의 ‘천천히 가난해지는 것(ジリ貧)을 피하려고 갑자기 망하는 것(ドカ貧)이 되지 않도록 주의 바랍니다’라는 지적도 있었던 가운데 왜 큰 노선은 바뀌지 못했는가.

대일본 제국 헌법 아래에서는 군대를 지휘하는 권한인 통수권(統帥権)은 독립된 것으로 되어 정치와 군사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정치 즉 문민(⽂⺠)이 우위여야 한다는 ‘문민통제(⽂⺠統制)’의 원칙이 제도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짧게 축약해서 정리해보면.

일본은 정치와 군사를 통합하는 매커니즘이 없었습니다.
통수권과 정당의 힘이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즉 서로 싸우기 딱 좋았던 환경있습니다.

이러다가 1930년 일본의 정당은 군부에 대한 통제를 잃었습니다.
반군 연설을 한 의원은 사직당하였고.

의회가 군에 대한 통제를 잃자.
전황이 악화됨에도 육군과 해군은 서로 체면을 내세워 예산 획득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예산심의가 군의 대한 “브레이크” 기능을 하였으나 비밀회의에서 심의가 행해졌고 전부 특별 회계로 처리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제협조를 중시하고 정치에 의대 군을 통제하려했던 정치가들은 국수주의자나 청년 장교들에 의해서 암살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미디어의 문제였습니다.

일본의 언론들은 1920년 대외 팽창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주사변 이후 미디어의 논조는 적극적인 전쟁지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미디어의 논조가 바뀌게 되었나?

심플합니다. 전쟁 보도가 “잘팔리기” 때문입니다.

이후 1930년 미국의 대공황, 전세계적 보호무역으로 일본의 수출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로 불황은 심화되었고 네셔널리즘이 고양되었고. 전세계적으로 파시스트 당이 대두되었습니다.

*네셔널리즘: 집단적 동질감·소속감·연대감에 기반한 공동체인 nation을 중시하는 사상·행동의 총체를 의미

이후 1937년 가을 언론 통제에 강화에 따라 전쟁에 대한 정책에 비판은 봉쇄되었고 전쟁을 지지하는 논조만이 국민들에게 전달되어습니다.

이후 일본은 문민통제에 제도로서 정비되게 되었습니다.

내각총리대신 기타 국무대신은 문민이어야하고 자위대는 자위대법상 내각총리대신의 지휘하에 놓여있게 되었씁니다.

이시바 총리는

정치계는 자위대를 다루는 능력과 견해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현재의 문민통제의 제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운용해나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굴하지 않는, 대세에 휩쓸리지 않는 정치가로서 긍지와 책임감을 가져야합니다.

정치에는 조직의 종적관계를 극복하고 통합할 책임이 있습니다. 조직이 할거 및 대립하고 일본의 국익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육군과 해군이 서로의 조직의 논리를 최우선하여 대립하고, 각각의 내부에서조차 군령과 군정이 연계가 결여되어 국가의 의사를 일원화할 수 없는 채로, 국가 전체가 전쟁에 이끌려 간 역사를 교훈으로 해야 합니다.

정치는 항상 국민 전체의 이익과 복지를 생각하고 장기적인 관점에 서는 합리적 판단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고 상황이 막히게되면, 성공 가능성이 낮고 위험이 높더라도 용감한 목소리와 대담한 해결책을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해군의 나가노 오사미(永野修⾝) 군령부 총장은 개전을 수술에 비유하며 「상당한 걱정은 있습니다만, 이 큰병을 치유하려면 큰 결심을 가지고, 국난 극복을 결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싸우지 않아도 망국으로 정부는 판단했지만, 싸워도 망국에 이를지 모른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 국망했을 경우는 영혼까지 잃은 진정한 망국이다」고 했습니다. 또한 도조 히데키 육군대신은 고노에 후마마로 수상에 대한 대답에서 “사람은 때로 기요미즈의 무대에서 눈감고 뛰어내릴 필요가 있다”며 압박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처럼,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보다 정신적·정서적인 판단이 중시되어 버리는 것에 의해, 나라가 나아가야 할 침로를 오판한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고 상황이 막히게되면, 성공 가능성이 낮고 위험이 높더라도 용감한 목소리와 대담한 해결책을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보다 정신적·정서적인 판단이 중시되어 버리는 것에 의해, 나라가 나아가야 할 침로를 오판한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이 정말 중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정부가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제동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의회와 언론입니다. 국회는 헌법에 의해 주어진 권능을 행사함으로써 정부의 활동을 적절히 점검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정치는 일시적인 여론에 맞춰 인기 위주 정책으로 움직여 국익을 훼손하는 당리당략과 자기 보신으로 치달아서는 안됩니다.

사명감을 가진 저널리즘을 포함한 건전한 언론 공간이 필요합니다. 먼저의 세계대전에서도 미디어가 여론을 부추겨 국민을 무모한 전쟁으로 유도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과도한 상업주의에 빠져서는 안되며, 편협한 내셔널리즘, 차별 및 배제주의를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아베 전 총리가 소중한 목숨을 잃은 사건을 포함하여 폭력에 의한 정치의 유린, 자유로운 언론을 위협하는 차별적 언론은 결코 용인해서는 안됩니다.

이 모든 기초가 되는 것은 역사에 배우는 자세입니다.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성실함, 타인의 주장에도 겸허하게 듣는 관용을 가진 본래의 리버럴리즘, 건전하고 강인한 민주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위 발언은 일본 총리로써 말하기 매우 힘든말입니다.

윈스턴 처칠이 설파한 것처럼, 민주주의는 결코 완벽한 정치 형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며 때로는 실수도 저지르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 나라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실력조직이 민주적 통제를 넘어 폭주하는 경우,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는 취약한 것입니다. 한편, 문민인 정치가가 판단을 잘못해, 전쟁에 돌진해 나가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문민 통제, 적절한 정군 관계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부, 의회, 실력조직, 미디어 모두가 이를 항상 인식해야 합니다.

사이토 타카오 의원은 반군 연설에서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인,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정복하는 것이 전쟁이라고 논하고, 이것을 무시하고 성전(聖戦)의 미명에 숨어 국가 백년의 대계를 잘못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리얼리즘에 근거한 정책의 중요성을 주장하여 중의원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이듬해 중의원 방공법위원회에서 육군성은 공습시 시민이 대피하는 것은 전쟁 계속 의사의 파탄이 된다고 말하고, 이를 부정했습니다.

어느 쪽도 먼 과거의 사건이지만, 의회의 책무 포기, 정신주의(精神主義)의 횡행이나 인명·인권 경시의 무서움을 전하고도 남습니다. 역사에 정면에서 마주보는 일 없이, 밝은 미래는 개척할 수 없습니다. 역사에서 배우는 중요성은 우리나라가 전후 가장 엄격하고 복잡한 안보 환경에 놓여 있는 지금이야말로 재인식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전쟁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해마다 적어져, 기억의 풍화가 위태로워지고 있는 지금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도 포함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과거의 대전이나 평화의 존재에 대해 능동적으로 생각하며 장래에 살려 나감으로써, 평화 국가로서의 기초가 한층 강화되어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앞의 대전의 여러가지 교훈을 근거로 두 번 다시 그런 참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능한 노력을 해나가겠습니다.

레이와 7년 10월 10일
내각총리대신 이시바 시게루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적 여론의 상황은 단군이래 가장 “양극화”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정치 및 여론의 양극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과 같이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의 초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물가, 저성장, 청년실업률 상승은 결국 네셔널리즘(민족주의)의 부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지지자와 의원들이 “중국/미국”이란 국가에
대해서 첨예하게 대립을 하는 것으로 뒷받침 됩니다.

정치는 일시적인 여론에 맞춰 인기 위주 정책으로 움직여 국익을 훼손하는 당리당략과 자기 보신으로 치달아서는 안됩니다.

정치인들은 결국 정치공학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표를 위해서는 지지자가 원하는 말을 해야합니다.

진실을 고하는 사람보다 거짓을 고하는 사람이 인기가 많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사명감을 가진 저널리즘을 포함한 건전한 언론 공간이 필요합니다. 먼저의 세계대전에서도 미디어가 여론을 부추겨 국민을 무모한 전쟁으로 유도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과도한 상업주의에 빠져서는 안되며, 편협한 내셔널리즘, 차별 및 배제주의를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중국이라는 나라는 무서운 나라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증거가 있어야합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둘다 제 생각에는 “증거”가 없습니다.
“근거”와는 다릅니다. 왜냐면 “근거”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증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근거” 하나를 바탕으로 한 주장이 각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라는 말도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주장”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론 머스크, 트럼프와 같이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장”을 하니 마치 주장이 “진실”인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지금 현 전세계의 상황인 것 같습니다.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굴하지 않는, 대세에 휩쓸리지 않는 정치가로서 긍지와 책임감을 가져야합니다.

위와 같은 정치가들은 소위 “양비론자” 취급을 당하여 차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임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고 상황이 막히게되면, 성공 가능성이 낮고 위험이 높더라도 용감한 목소리와 대담한 해결책을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상황입니다.
전쟁을 원하고, 극단적인 해결책을 원합니다.

요나이 미쓰마사(⽶内光政) 전 총리의 ‘천천히 가난해지는 것(ジリ貧)을 피하려고 갑자기 망하는 것(ドカ貧)이 되지 않도록 주의 바랍니다’라는 지적도 있었던 가운데 왜 큰 노선은 바뀌지 못했는가.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한번더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본인이 지금 “민족주의자”로 변하고 있는지는 아닌지, 오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감정적이지 않고,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보시길 바라며

한번 더 가장 중요한 문구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전쟁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해마다 적어져, 기억의 풍화가 위태로워지고 있는 지금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도 포함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과거의 대전이나 평화의 존재에 대해 능동적으로 생각하며 장래에 살려 나감으로써, 평화 국가로서의 기초가 한층 강화되어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