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책을 읽을 때 유한계급이라고 하여서 有限계급인줄 알았으나 有閑계급이었습니다.
즉 있으면서 한가한 계급이라는 겁니다.
해당 책에서는 가부장적인 과거 이야기를 담아 현 시대에 적용시키는 것이 조금 한계가 있지만 큰 틀에서 아직도 인간사회는 베블런의 유한계급 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책에서 많이 언급되는 유한계급의 종류에서는 여자, 스포츠, 고전 등등이 있습니다.
2. 시작
가부장적인 사회의 시작은 여성을 전리품으로써 약탈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초기 야만사회에서는 적들과 싸우면서 적의 여자를 포로로 납치하고 이후 결혼 즉 소유 – 결혼 관례를 낳았습니다. 이후 여자 외에도 열등한 인간들을 노예로 하면서 소유의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부”는 소유자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명예로운 증거로써 효용성을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위에는 정말 소유의 시작이 어떻게 발전 했으냐를 적었고 이후 제가 느낀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유한생활 즉 스포츠, 고전과 같은 것들은 공동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인간의 삶의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좁은의미에서 구체적인 생산물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저는 이것이 넓은 의미에서도 구체적인 생산물을 남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유한생활에서 핵심은 “자신이 시간을 얼마나 낭비 했는가”입니다. 이에 따라서 명예가 주어집니다.
자신의 생활은 비천한 산업노동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합니다.
특히 규범의 예법은 유한계급의 산물이자 전형이며 신분제도하에서만 만개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하인을 생각해봅시다. 부자집에서 하인들은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이는 과연 효율적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인에게 제복을 입히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낭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표출하며 유한계급에서의 자신의 “낭비”를 과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가 지나며 여성들의 대리 유한활동이 중요해집니다. 여성들에게는 남편의 노동을 통해 얻은 “부”를 통해 대리유한활동을 통해 주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활동들을 합니다.
여성들에게 입히는 옷, 절대 지팡이를 못들게 하는 것과 같은 행동들이 여성이 유한생활 즉 생산성이 있는 일을 안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즉 아내는 암묵적으로 자유가 없는 남자의 노예로 남는 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과시하는 것이 주요 “업무”입니다.
이후 물건들로 관점을 이동해보면 이상한 모양의 가구 스푼들은 공장재에 비해서 장점이 없습니다.
일관성, 신뢰성이 각각 수제이기에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자신은 낭비를 했다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위와 같은 것들을 사용합니다.
남자들 역시 초기에는 검소한 생활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돈을 사용할 능력이 없고 금전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비난하지만 나중에는 값싼물건들을 불명예스럽고 싸구려라는 이유만으로 본질적으로 불명예스럽고 가치없는 것이라고 천시한다. 추후 이를 공식화 하고 사고에 뿌리 박히게 되면 모든 소비에 걸쳐 과시하려는 의도도 없었지만 낭비적인 사치성에 집착하게 된다.
이로 인해서 “싸구려 외투는 그 옷을 걸친 사람을 싸구려로 만든다 “와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의복은 낭비적인 소비를 입증하고 소박한 직접적인 증거이다.
의복에 종류에 따라 마음것 소비하고 사치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한다, 이는 곧 사회적 가치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다. 해당 의복을 통해 자신은 비천한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한다.
전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산업과정에서 면제받은 유한생활을 강조하는 것에는 지팡이, 실크해트가 유용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연상시키는 데서 발생한다.
여성복은 남성복보다 이러한 성향이 매우 강하다. 여성의 의복은 현대 남성의 의복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의 면제를 받는다는 점을 입증할 뿐만 아니다.
프랑스힐, 우아한 여성용 보닛, 스커트, 긴머리 등등이 있다, 특히 코르셋은 여성의 생활력을 악화시키고 확실하게 노동에 적합하지 않도록 불구로 만들기 위해 충분한 의상이다. 코르셋은 개인적인 매력을 상실시키지만 그 상실은 매우 가치있게 평가한다.
대체로 유한계급은 만연한 경제적 압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 생계수단을 위한 투쟁의 절박함은 다른 계급과 달리 유한계급에게는 그렇게 가혹한 일은 아니다.
이로인해 스포츠와 같이 그들만을 위한 생산성이 없는 제도, 환경이 발전해나간다.
종교적 소비 역시 과시적 소비인데 종교를 다니기 위해 사용하는 시간, 돈 때문이다.
의인주의와 같이 추장과 인격신을 섬기기 위해 사치스러운 건물을 짓는다.
추장 앞에 나가는 성직자들 역시 화려하고 비싼 장식이 달린 옷을 입는다. 이는 모두 신도들의 돈이다. 신도들 역시 앞에서 설명한 자를 통해 대리유한소비를 한다.
이러한 소비의 형태는 가난할 수록 많이 발생한다. 지력이 낮은 계급 및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계급들은 종교를 통해 의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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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심은 범법자와 타락한 자들이 더 많다.
특히 샤머니즘 관습과 효엄을 지닌 소박한 정령숭배적 신앙의 형태를 가진다.
종교적 태도를 벗어난 사람을 찾으려면 재력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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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이 나타나는 “여성 문제”의 몇 가지 양상을 보면, 현대사회, 특히 상류사회에 속하는 여성의 생활은 초기 발전 단계의 경제적 상황하에 저 형성된 상식 체계의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민적, 경 제적, 사회적 관계로 본 여성의 생활은 일반적, 본질적으로 대리 생활이 며, 생활의 장점이나 단점은 본질적으로 여성의 소유자나 보호자 관계 에 있는 다른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라고 여전히 여겨진다.
를테면 공인된 예법 준칙이 금하는 명령에 위배되는 행동을 어떤 여성 이 하면, 이는 곧 그 여성을 소유하고 있는 남성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로 간주된다.
물론 그런 따위의 불명예스런 짓을 여성의 연약함이나 옹고집 탓으 로 돌리는 사람이라면 내심 부조리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이러한 문제를 놓고 사회적 상식은 서슴없이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보호자의 역할이 모욕당했다는 자신의 인식을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거의 없다. 그런 모욕은 언제든 당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자신의 생활과 결부된 남성의 악행 때문에 여성이 불명예를 뒤집어쓰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생활양식, 즉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양식 은 여성에게 남성의 활동을 보조하는 “본분”을 배정한다. 그리고 여성 에게 부여된 의무 영역의 전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행동은 여자 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의 시민권이나 참정권의 문제가 대두 되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상식-즉,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보 편적인 생활양식에서 비롯된 논리적 견해ㅡ은 여성이 직접 대표로 나 설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가정의 가장을 매개로 국가를 대표하거나 법률 앞에 대표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주적이며 자기중심적 인 생활을 원하는 마음은 여성답지 못한 것이다. 한둘이 아니다. 최근에 한 유명한 사회 평론가는 앵글로 “신여성”을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신여성은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 며 열심히 일하는 남편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산다……. 신여성은 교 육을 비롯해 거의 모든 면에서 남편보다 훨씬 월등하다. 신여성은 세심 한 배려를 수없이 받고 있다. 그럼에도 만족할 줄 모른다. 색슨 계통의 ‘신여성’은 현대의 가장 우스꽝스러운 산물이기에 금세기 의 가장 끔찍한 실패작으로 전락할 운명을 타고났다.” 이러한 표현은 어쩌면 정확히 겨냥하고 있는 비하하는 속뜻을 제외하면, 여성 문제를 더욱더 모호하게 만들 뿐이다.
이렇게 여성 운동의 전형적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여성이 만족하며 살아야 할 이유로 강조되곤 하는데, 신여성의 불만 요소는 바로 그런 것들이다. 신여성은 귀여움을 받고 살고, 남편이나 본래의 다른 보호 자를 대신해서 마음껏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허용되고, 심지어는 그렇게 소비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녀는 본래 (금전상의) 보호자의 명성 유지를 위한 대리 유한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저속하고 유용한 노동 을 면제받거나 금지당한다. 이러한 임무는 목적 있는 활동을 하려는 인 간의 충동과는 상반된 것인 동시에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인습적인 표 시이다. 물론 이들 여성 또한 헛된 생활과 낭비를 혐오하는 제작 본능을 자기 몫만큼, 혹은 그 이상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을 갖고 타고난 다. 그녀는 자신이 접한 경제 환경의 직접적인 자극에 반응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
제 개인적인 기록 용도로 작성되었기에 두서가 없는 점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낭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 시키는 것
저는 사실 이게 제일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 말이 틀린 사실이라고 생각은 안하거든요 세상의 많은 사치품들을 보십쇼 그것을 왜 구매하는지 생각해보십쇼 그것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합니다.
-> 여기서 가치를 증명한다고 하였는데 핵심은 “낭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을 왜 해야할까요? 우리는 남의 시선을 신경쓰고 있습니다.

자크 라캉의 문장중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즉 자신의 생각보다 타인의 생각을 신경쓰며 산다는 것이죠 결국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베블런이 비판한 유한계급 잘못된 행동 즉 “낭비”를 하는 행동에서 벗어나려면 결국에는 자신이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 저는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친구분의 아버님이 이러한 철학에 대한 조예가 깊으신데 타자의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그걸 못찾겠습니다.
이 블로그 역시 탄생은 주식입니다.
주식에서는 BM이 있습니다 벤치마크죠 벤치마크는 자신의 성과를 특정 대상 대비 비교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타인과 동일한 수준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즉 BM 대상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결국 “낭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즉 저는 근본이 잘못된 것이죠,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과 비교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니깐요.
그런고로 세상 모든 것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연하게 때로는 정파의 답이 아닌 사파의 답이 정답일 수 있겠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야겠습니다.
저 역시 낭비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는 시계도 하나 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 필요 없다는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위한 소비 혹은 “낭비”를 통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이죠.
오랫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만의 듀얼을 해보겠습니다.
오직 저만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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